2021년 한 교수님께 추천받았던 <<생각에 관한 생각>>(원제 : Thinking, FAST and SLOW)을 그해 가을 즈음 대충 봤었는데, 작년 2월 기회가 닿아 정독했다. 근데 한국판 제목 누가 지었을까?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니.. WoVV 재밌네.
p.38 “우리는 명백한 것조차 못 볼 수 있으며, 자신이 못 본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1. 사고 체계는 시스템1(FAST), 시스템2(SLOW)로 구분할 수 있다.
- 시스템1 : 직관적, 무의식(자동)적 사고
예시) 2+3, 위험에 대한 즉각적 반응 - 시스템2 : 논리적, 복잡한(수고가 필요한) 사고
예시) 573*481, 독후감
2. 휴리스틱(어림짐작)과 인지 편향
- 휴리스틱 : 정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시스템1(FAST)이 사용하는 정신적 지름길. 환경 적응을 돕지만,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 가용성 휴리스틱 : 어떤 사건이 발생한 빈도를 판단할 때, 객관적 정보 보다는 얼마나 떠올리기 쉬우냐에 따라 그 빈도를 판단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사고가 드물어도 뉴스에 자주 보도되면 사람들은 이를 과대평가한다.
- 편향 : 지름길이 낳은 오류나 왜곡을 의미한다. 시스템1(FAST)으로 비롯된 이 편향에 대해 이해한다면, 나의 인식과 타인의 반응을 돌아볼 수 있고, 인간 관계를 보다 매끄럽고 수월하게 개선할 수 있다. 또한 어떠한 자료나 현상을 올바른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
- 후광 편향 : 한 가지 긍정적인 특성이 다른 특성에 대한 판단까지 좋게 만든다. 앞서 발견한 좋았던 경험 때문에 내가 실제보다 좋게 판단하는 것일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반대로 무언가의 안 좋은 모습을 보더라도 그 하나로 미루어 나머지를 판단하지 말고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 알고 싶다면 말이다.
- 확증 편향 : 자신의 기호와 신념과 일치하는 (맛있고, 이해가 쉬운) 정보만 수용하는 경향. 예를 들면, 이 독후감을 읽을 때, 동의하거나 공감되거나 이해가 쉬운 내용은 상대적으로 잘 받아들여진다. 나는 평소 시사 문제를 접할 때, 사건에 대한 해석에 나도 모르는 확증 편향이 끼어있던 것은 아닌지 대단히 의식하며 해석한다. 다양한 입장을 고려한 사고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참고할만한 자료로, 왜 사실이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가(링크)라는 유명한 기사가 있다.
- 손실 회피 편향 : 사람들은 (같은 수치더라도) 이익을 얻는 것보다 손실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사건을 두고 '내가 어떤 프레임을 갖고 사고하는지' 돌아보며 보다 합리적인 판단과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다른 이에게 제안하는 방식에 대해 유용한 태도를 갖출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 소유 편향 : 사람들은 자신이 보유한 것을 과대 평가한다. 더 나은 기회에 투자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 현명할지라도 그 자산을 손해보고 매도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기회비용을 고려하여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 이 밖에도 여러 편향이 있지만 모두 소개하지는 않겠다.
3. 행복은 두 자아에 의해 다르게 인식된다.
- 경험하는 자아 : 지금 이 순간을 실시간으로 살아가는 자아
- 기억하는 자아 :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고 기억을 만드는 자아
위의 두 자아는 Peak-End Rule에 의해 ‘같은 경험을 완전히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 Peak-End Rule은 기억하는 자아가 경험을 평가할 때 최고점(peak)과 마지막 순간(end)에 집중한다는 심리적 원리다.
예시)
- 휴가가 전체적으로 즐거웠는데 마지막에 차가 고장 나서 고생했다면, 기억하는 자아는 그 나쁜 결말 때문에 휴가 전체를 부정적으로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 연인 관계의 대부분의 시간이 평범하거나 심지어 갈등으로 가득했더라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peak)과 이별 상황이 긍정적(end)이었다면, 나중에 이 관계를 회상할 때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실제로는 대체로 행복한 사이였더라도 이별이 비극적이었다면 관계 전체가 부정적으로 기억될 수 있다.
결론 : 행복은 단순히 경험하는 순간의 총합이 아니라, 기억하는 자아가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이 정보가 “결정적 순간(peak, end)을 잘 관리하자”라는 결론으로 향한다면 만족스럽지 않다. 앞으로는 경험을 떠올릴 때 올바르게 인식(기억)하자. 그래야 알맞은 피드백을 느끼며 나아갈 수 있다. 행복은 순간을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기억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연스럽게 파생된 생각. 다소 주제에서 벗어나더라도, 나는 이런 내용이 독 후 ‘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까지 AI모델의 발전은 알고리즘의 개선보다는 주로 컴퓨팅 파워(연산량)와 데이터의 양을 늘리는 '스케일링 법칙'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①거대한 학습(훈련) 비용이 들고, ②더 이상 학습할 데이터가 부족해 성능 개선이 정체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런데, 돌파하는 아이디어로 시스템2(SLOW)를 모방한 '생각 시간'을 늘리는 방법론(링크)을 접하게 된다거나, 생각의 연결(Chain Of Thought) 기술로 단계적 문제 해결을 해 나아가는 추론 모델의 성능을 체감하며, 뇌의 작동 모방과 AI 모델 개선의 연관성이 참 흥미롭다고 느낀다.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자. 데이터 부족이라고? 인류 역사의 모든 정보(인터넷에 있는)를 학습하고, 더 이상 넣을 자료가 없다니. 경이롭다.
스무 살, 모든 분야를 혼자서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고, 3일 동안 좌절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고 협력해서 어려운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세상에는 나만큼이나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화할 수 있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새로운 가능성도 느끼고 있다. 모든 분야를 점점 잘해가는 AI를 보며, 파생될 나뭇가지들이 기대 된다. 기술을 이해하고 잘 활용하고 싶다. 개인의 한계를 초월하고 싶다.
문득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고뇌한 모래알이 쌓여 연결된 지금의 기술과 여태까지의 사람들이 너무나 경탄스럽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정말 이롭다고 느낀다.
- 정보 이론 : 모든 것은 bit로 표현될 수 있다
- 헵 규칙 : 함께 활성화되는 뉴런은, 연결 강도가 강화된다
- GPU : 대규모 병렬 연산
- 오차 역전파 : 가중치 조절
- 트랜스포머 구조 : 문맥을 이해하는 AI의 핵심 설계
아이디어와 발견이 참 대단하다. 이런 시대를 살고 싶어하고 꿈꾸던 이가 얼마나 많았을까. 오늘날 컴퓨터의 원형을 고안하고 설계까지 마쳤지만 당시에는 기술의 한계로 구현할 수 없었던 찰스 배비지(1792~1871)가 컴퓨터를 향한 가득한 열망을 표현하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500년 후의 미래를 단 3일만 구경할 수 있다면 여생을 포기하겠다”
나도 미래를 보고 싶다. 이 시대(그레고리력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것은 때때로 외롭고 슬프기도 하지만, 분명 행복하고 재미있다. 지금의 이런 생각을 즐길 수 있는 나를 있게 만든 모든 환경과 우연에 너무나 감사하고 감동스럽다.
고뇌하는 AI(추론 모델) 또한 우리가 상상하는 인공 지성의 한계는 아닐 것이다. 트랜스포머 아키텍처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다음 패러다임은 뭘까? 극단적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은, 힌트가 되기도 한다.
100만년 뒤의 (만약 사이보그가 아닌 인류가 존속된다면) 생각 기관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남아있긴 하려나? 뇌를 초월하는 기관이 출현할까? 진화가 극에 달하면 생물은 본능적or반응적 시스템 체계가 될까? 수고를 들여야 할 수 있는 시스템2 사고가 시스템1 레벨에서 수행되리라 생각한다(체스 마스터가 수많은 패턴을 학습하여 복잡한 판단을 직관적으로 내리는 것처럼). 어라, 그럼 시스템 3 사고 체계라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어떤 구조일까? AI 모델 구조를 연구할 때 이런 상상을 해본 사람도 있겠지?
어쩌면, 근본적으로 뇌를 모방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필연적으로 비생물적 지성체가 되려나? 궁극적으로, 생각은 필요한가? 모든 의사결정이 최적화되어 자동화 된다면, 생각은 불필요한 행위가 될 수도 있겠네. ‘생각’이라는 단어는 지금과 다른 뜻을 의미하게 될 것 같다. 이쯤되면 존재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뿌리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마저 작성해야 하니까 이제 그만 생각하고 넘어가자.
추론과 판단 능력을 개선하고 싶다. 나는 기계가 되고 싶은 것일까? ‘인간적이다’, ‘낭만적이다’와 같은 키워드는 형용하기 어렵고 묘한 감성을 전달한다. 나는 바보에게 어쩔 수 없이 반하는 측면이 있다. 어떤 특질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에 향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나 또한 바보가 되고 싶으면서도 가끔 생각하면 기계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더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내가 ‘인지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의 메커니즘을, 조금씩 선명하게 이해해 가면서, 점차 합리적이고 타당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다보면 가끔은 나의 인간성에 대해 스스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슬퍼해야 할 상황에서 손쉽게 꽤 괜찮은 정서 상태로 빠져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슬픔을 느끼는 데에 시스템2 사고가 필요하다면, 이것은 슬픈 일일까, 기쁜 일일까. 바보와 기계는 반의어인가?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더 많은 탐구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고민에도, 잘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나중에는 성향을 디자인 할 수 있는 신경외과적 기술이 개발될 것 같다. 미용 목적의 성형 수술을 하듯, 효율적인 성격으로 내면을 변화시키는 기술적 조치가 (분자 레벨에서일까?) 가능할 것 같다. 인격 수술이 손쉽게 가능하다면, 동일한 사건에 대해 스트레스를 느끼는 회로 구조를 교정하고 싶은 심리가 자연스레 작동하지 않을까? 정신적·감정적 비용이 낮은 방향으로 수렴되기 마련이 아닌가?
만약 다양한(코스트 높은) 개성이 도태된다면, 인류는 그 시점에 미덕으로 평가받은 가치관 범위 안에 갇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예방을 위해 이상(위험)하다고 평가되는 특질 또한 교정이 가능함에도 남겨 두어야 하는가? 범위 바깥의 세계엔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지도 못한 생각을 하고 싶다.
앞으로는 더 가볍게, 더 날 것의 생각을 쓰자. 책의 정보도 좋지만, 누군가의 생각이 더 궁금하다. 내가 읽고 싶은 글이 바로 그런 것이지 않은가. 과감히 주제에서 벗어나고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서술하자. 글을 완성하려는 생각도 애초에 버리자. 흔적에 얽매이지 않고, 다음을 나아가야 한다.
읽어둘만한 책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을 해보았다.
발행일 : 2018. 3. 30.
쪽수 : 727
만족도 : 9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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