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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탐험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크리스텔 프티콜랭 / 이세진

by 열린아이 2025. 4. 15.

 도서관 책장을 훑어보다 '생각' 키워드가 있는 도서를 우연히 발견했다. 어떤 심리 치료사가 본인의 상담 경험에 기반하여 왕성한 사고 활동으로 힘듦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담았다고 한다. 별 기대 안 했는데 저자의 분석이 몇 군데 와닿아 재미있었다.

 

 

 

 

발행일 : 2014. 5. 20.

쪽수 : 272

 

저자

yes24 작가 자료

 


재밌었던 장면들

p.23-26 정신 활동이 활발한 사람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수신할 뿐 아니라 강세도 더 크게 부여한다. 이게 바로 감각 과민증(hyperesthesie)이다. 정신 활동이 지나차게 활발한 사람이 어느 방에 들어간다고 치자. 그는 유독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보통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 사소하고 일화적인 특징들까지 포착할 것이다.
 다음은 프랑수아가 우리 상담실을 처음 방문하고 나서 보낸 메일이다.

 저의 일상을 선생님께 설명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선생님 상담실을 처음 방문한 날을 예로 들어서 말이죠.(기분이 상하진 않으시겠죠?)
 차를 세웁니다. 선생님은 차를 안에 세우는지, 밖에 세우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어느 차가 선생님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선생님도 자동차를 좋아할까요?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딱히 눈길을 끄는 차는 없어 보이네요. 선생님은 여기에 주차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차례입니다. 우편함도 그렇고, 이 현관 인터폰도 그렇고 선생님 이름은 물리치료사들의 것과는 다른 서체로 찍혀 있네요. 선생님이 이 진료소에 좀 나중에 들어오셨나 봅니다. 왜 그럴까요? 그럼 그 전에는 어디서 개원을 하셨을까? 자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아니면 아예 자택에서 진료를 보셨을 수도? 주소지가 바뀌어서 단골들이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을까?
 안으로 들어갑니다. 건물 안의 인터폰은 고장이네요. 수리를 해야겠어요. 왜 이걸 수리하지 않았담? 대기실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물리치료사들은 일을 하는 중인가? 선생님은 내원객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예약을 잘 잡아 두는 것 같군요. 대기실에 비치된 잡지들은 좀 오래됐네요. OO지가 특히 많은데 내 취향에는 안 맞는 잡지죠. 이 잡지를 정기 구독하시나? 설마 정치 성향도 이쪽이신가? 아, 싫은데! 창밖을 바라봅니다. 별것 없군요. 왠지 마음이 답답합니다. 담벼락이 창문하고 너무 가까이 있어서 전망이 확 죽네요.
 이때 선생님 목소리가 들립니다. 선생님의 외모를 상상해 봅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여자 분일 것 같아요. 멜라민 바닥 위를 걸어오는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들리네요.(난 이 소리가 싫어요. 온기라곤 없는 차가운 느낌이잖아요.) 키가 크다면 굽이 굽 있는 구두를 신지 않아도 될 텐데, 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봅니다. 빙고, 제가 생각한 모습 그대로예요. 선생님이 손을 내밉니다. 포옹을 하면 선생님을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는 못 하겠네요. 그래서 악수만 하고 맙니다. 기분 좋은 악수였어요. 손아귀에 힘이 있지만 위압적인 느낌은 들지 않네요. 향수는 쓰지 않거나 가벼운 향을 살짝 쓰는 분 같아요. 잘됐습니다. 향수를 많이 뿌리거나 독한 향을 쓰는 여자는 질색이니까요.
 선생님을 따라 상담실로 갑니다. 물리치료사들의 진료실은 어디인지, 그들은 어떻게 치료를 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선생님 상담실은 복도로 들어가서 첫 번째 방이군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네요. 좀 차가운 느낌이라서 커다란 화분이라도 하나 들여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망도 너무 답답하고요. 책상 위에는 별것 없지만 볼펜만은 색깔별로 여러 자루가 겹쳐져 있어요. 왜 그럴까 또 궁금해집니다.
 두 번째 방은 좀 낫네요. 빨간 안락의자가 마음에 듭니다. 이 의자만 다른 집기보다 오래된 것 같아요. 예전 진료소에서부터 쓰던 물건일까요? 아마 그런 것 같네요. 자리에 앉습니다.
 선생님께 관심이 갑니다. (아까 복도에서부터 그랬지만) 선생님 옷차림을 분석합니다. 여러 색깔에, 광택이 있고, 전반적으로 몸에 붙는 스타일이네요. 본인의 몸매에 웬만큼 만족하시는 편인가 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선생님 책에 실린 사진들을 떠올리며 머리 모양도 살펴봅니다. 마음에 들어요. 살갗이 좀 탄 것을 보니 해수욕을 좋아하시나 봐요. 액세서리는 많이 하지 않으시네요. 그 편이 선생님에겐 어울립니다. 금팔찌나 요란한 팔찌보다는 약간 귀여운 디자인의 팔찌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손을 눈여겨봅니다. 저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항상 상대의 손을 유심히 봅니다. 마음에 드는 손이에요. 이건 저한테 굉장히 중요합니다.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그래도 긴장을 다 풀지는 않았죠. 선생님에게 조종당하기 쉽겠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제가 선생님한테만 이러는 건 아닙니다. 전 항상 이런 식이에요. 오늘 이 진료소를 오기 전에 저 구석에 있는 신문가판대에 들렀습니다. 거기서 한 3분이나 있었나, 그 3분 사이에도 족히 스무 가지는 되는 의문들이 뇌리를 스치더군요...

 


p.147 (...) 이 가치 체계의 또 다른 불편 사항은 그 자체로 충족적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규범과 규약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신 활동이 비범한 사람이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는 어떤 규칙이나 지시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 규칙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 그 대신 벌을 달게 받을 것이다. 그의 결정은 그의 가치 체계로 미루어 예상될 수 있는 것이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그들 특유의 통찰력으로 보통 사람들이 잘 감지하지 못하는 부조리, 불의, 위험, 박애 정신의 결여를 알아차린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런 부분까지 섬세하게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반항을 엉뚱한 도발이나 기분에 따른 행위로 오해한다. 결국 그들을 실망을 맛볼 수밖에 없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원칙적으로 대단히 정직하고 규칙을 양심적으로 준수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리석은 규칙이나 악법에 대해서는 예외를 둔다. 매사에 의심 많고 태도가 불확실한 이 사람들이 자기 이상에 어긋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얼마나 단호한지 모른다. 항상 그들의 개인적인 윤리가 이긴다. 그 윤리에 입각한 것이라면 일탈 행위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고, 벌금을 내거나 나아가서는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들은 떳떳하게 벌을 받지만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실은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독재도 국민의 저항에 부딪히는 것이다. 그들의 용기는 그들의 신념만큼 굳건하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고 자기 말만 옳다고 주장하는 형국이 된다.

 : ㅋㅋㅋㅋ


p.149 권위와의 관계도 대체 원만치 않다. 질투, 시기, 알력 다툼이 존재하지 않는 그들의 가치 체계에서는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직책에 있든지간에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게 정상이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올곧은 성품, 남다른 용기, 빼어난 자질 앞에서는 허심탄회하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진심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탄복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면 평사원과 회장님을 똑같이 대한다. 굽실대고 찬사를 쏟아 내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거물들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태도를 다소 모욕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게다가 위계질서 자체를 존중하는 감각이 없는 편이다.

 : 맞다.


p.151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자신이 만나는 상대도 본인의 잠재적 자질과 가능성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이처럼 지나치게 긍정적인 시선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상대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다정다감하게 구는 걸까 하고 어리둥절해하고 뭔가 꿍꿍이가 있으니까 아부를 하는 거라고 오해한다. 또는 너무나 맑고 투명한 시선이 자신을 벌거벗기는 것 같아 불편할 수도 있다.

 : 누군가는 내 시선을 오해했을까? 아닌거같은뎅.


p.153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에 골치 아픈 문제들을 겪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친구라면', '죽마고우라면', '이웃이면' 마땅히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뚜렷한 생각이 있다. 이 모든 관계에서의 '바람직한 행동양식' 목록은 길기도 길거니와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래서 정신활동이 유별나게 활발한 사람들은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 반드시 연인, 친구, 이웃의 행동에 실망하기 마련이다.

 : 그랬었다.


p.176 보통 사람들은 여러분만큼 정서적 욕구가 크지 않다. 그들은 열띤 논쟁을 벌이거나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구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 (...) 대니얼 태멋(Daniel Tammet)은 <<뇌의 선물(Embracing The Wide Sky)>>에서 인간들의 쑥덕공론은 원숭이들의 이 잡기와 비슷한 기능, 즉 사회적 유대를 만드는 기능을 한다고 했다. (...) 그 의미가 정신적 과잉 활동인에게는 와 닿지 않을 뿐이다. 굳이 서로 이를 잡아 주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늘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니까.

 : 보통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인간을 아직 많이 모르네.


p.178 그들에게 "남은 내가 아니지."라는 말은 "아, 다리가 부러졌으면 다리가 알아서 치료를 받아야지. 나랑은 상관 없어!"라는 말 만큼이나 부조리하고 앞뒤가 안 맞는다.

 : ㅋㅋㅋㅋㅋ


p.178 여러분은 삶은 드넓은 공원처럼 생각한다. 여러분이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 공원의 작은 숲, 덤불, 꽃무리에 해당한다. 공원은 모두의 것이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한다.
 '공원에 다양한 식물이 자라니까 참 좋다. 그렇지 않았다면 훨씬 모양새가 단조로웠을걸! 그런데 왜 사람들은 숲과 꽃무리를 비교하고 뭐가 더 좋은지 따지는 걸까? (...)' (...)
 아, 제발 포기하기를! 여러분이 그 손님들을 모두 재교육할 수는 없다. 인구의 대다수를 여러분의 가치관에 따라 가르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이 정신적 과잉 활동인의 패러독스다. 세상 모두가 대등하기를 꿈꾸고 자신이 보통 사람들과 같아지기를 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남들이 자기처럼 되기를 바란다.

p.183 여러분에게는 의심과 의문을 줄기차게 생산해 내는 공장이 있다.

느낀 점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그런데, 자기가 생각이 많다고 느낀다고 정말 그 정도로 심각하게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나? 도서명으로 검색해서 둘러보니, 자신을 이해해주는 내용에 공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분들의 교보문고, yes24 리뷰

 나는 과자를 먹는 것처럼 가볍고 편안하게 읽었는데, 생각이 많아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었구나. 정말, 인간에겐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같은 활동을 했더라도 주변의 반응이 어땠느냐가 삶의 피드백 회로 설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낀다.

 만약 사람들이 좋아해주지 않았더라면 난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지금과는 아주 다르겠지. 말 거는 방법도 몰랐으려나? 동굴 속에서 살아갔을까? 사회에 적개심을 품었을까?

 내가 받아온 행운과 같이, 나도 사람들에게 응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해본다.

"차별화되는 것을 믿어라."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만족도 : 6 / 10